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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숨막히는 현대사와 유년의 추억을 찾아가는 서사시(敍事詩)기억의 단편들도 저마다 나름의 광채로 명멸,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서로간에 몇 광년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마치 천개(天蓋)의 같은 곡면에 박혀 있는 것처럼, 현기영의 자전적 소설인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를 유년으로 되돌려놓는다. 대장간, 종기, 전깃불, 유리구슬, 도깨비, 전투놀이 등 소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필자의 빼어난 통찰로 진행된다.어머니가 옷을 가져간 줄도 모르고 헤엄치다가 여자애들 볼세라 불알만 잡고 뛰던 주인공 똥깅이, 입 속까지 흘러내리던 국수가락 같은 코를 한순간 들이마시는 누렁코, 커다란 먹구슬나무를 겁 없이 오르는 나무타기 도사 웬깅이……. 별명만 들어도 상상이 되는 어린 개구쟁이들이 사춘기 소년으로 자라날 때까지의 우습고도 슬픈 이 이야기는(이 작품은 박재동의 애니메이션 영화 ''오돌또기''의 뼈대가 되고 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속 발생한 큰 사건들 (4. 3사건, 6. 25 등) 때문에 개인적 과거에 묶여 있지 않고 공동체의 과거, 즉 역사 속에서 소용돌이친다.여자 목욕탕, 터럭, 말미잘, 벌 등 성적 호기심에 가득 찬 사춘기 소년 ''똥깅이''의 모습도 적나라하게묘사되어 있다. 또한 제주 섬이라는 변경을 벗어나 육지로의 비상을 꿈꾸게 만들어준 신석이 형과의 일화, 맥베스 연극공연 이야기, 아버지와의 갈등 등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 겪는 아픔을 그대로 함께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