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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월이 덧없도다. 어느덧 삼복 염증이 지나고 구시월이 되었는가? 간밤에 불던 바람, 들 앞에 섰는 나무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흔들흔들 말지 않더니 무수한 낙엽이 분분(紛紛)히 날아 내리는구나. 저 낙엽을 무심한 사람이 무심히 보게 되면 밟고 가고 밟고 오며 비를 들어 버릴 따름이다. 조금도 사랑하고 어여삐 여기며 불쌍하고 슬피 여기지 아니할 터이로되, 풍상을 많이 겪어 강개(慷慨)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한 유지(有志) 남아는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한숨에 다 마신 후에 개천으로 굴러들어가는 저 낙엽을 두 손으로 얼풋 집어 다정히 돌아보며 말 한 마디를 불가불 물어보리로다. "낙엽아, 말 물어보자. 너는 어쩌다 낙엽이 되어 지금 저 모양으로 옛 가지를 사례하고 동서로 표박(漂泊)하여 부딪칠 곳이 바이 없는다? 머리를 돌려 너의 전신을 생각하건대, 삼우러 동풍에 영화로운 빛과 반성한 그늘이 사람으로 하여금 무궁한 흥을 이끌게 하던 네가 아니런가? 두어라 천시(天時)의 대사(代謝)함은 자연한 이치라, 동물 중 가장 신령한 사람의 힘으로도 면키 어렵거든, 하물며 식물된 너야 일러 무엇하리요. 그러나 묵은 잎이 떨어짐은 새로운 싹을 기르고자 함이니, 너는 부대 몸을 가벼이 가져 사면 팔방으로 날려가지 말고 낱낱이 옛 뿌리로 돌아와 명년에 다시 돋을 새 잎을 보호할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