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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애’晶愛’는 〈신여자’新女子’〉란 잡지를 보다가 또다시 미닫이를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시름없이 오는 비는 오히려 아니 그치었다. 하늘을 회칠한 듯 하던 구름이 히실히실 헤어져서 저리로 저리로 달아나건 만은 그래도 푸른 얼굴은 보이지 아니하고, 머리 올 같은 가랑비가 연기나 안개 모양으로 공중에 가물거리고 있었다. 오늘이 공일이라, 모처럼 동물원 구경을 가자고 동무들과 튼튼히 맞추어둔 것이 원수의 비로 말미암아 하릴없어 수포 (水泡)에 돌아가고 말았다. 비가 오거든 펑펑 쏟아지거나 하였으면 단념이나 하련마는 시들지 않은 가는 빗발이 부슬부슬 뿌리기만 하기 때문에, 그는 조금만 있으면 개려니, 얼마 안 되어 그치려니, 하는 일루(一縷)의 희망을 품고 미닫이가 닳도록 열어보고 또 열어보았음이었다. 정애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며, 혼잣말로 울듯이, ‘그저 비가 오네! 참 속상해 죽겠구먼!’ 하고 미닫이를 홱 닫고는 다시금 아까 보던 잡지를 들추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볼꼬? 이것을 볼까? 그런데 이것이 몇 페이지나 되노?’ 하고 손으로 책장을 날리며, ‘한 장 두 장 석 장…… 모다 석 장이구먼, 이것만 다 보고 나면 설마 비가 그치겠지.’ 무릎 밑에 깔린 치맛자락을 빼내기도 하고, 눈을 가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기도 하며, 턱 괸 한 팔을 무릎 위에 얹고는 맥맥히 보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