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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때는 김유신이 한창 들날리던 신라 말이다. 가을볕이 째듯이 비치인 마당에는 벼 낟가리, 콩 낟가리, 모밀 낟가리들이 우뚝우뚝 섰다. 마당 한쪽에는 겨우내 때일 통나무더미가 있다. 그 나무더미 밑에 어떤 열예닐곱 살된 어여쁘고도 튼튼한 처녀가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남쪽 한길을 바라보고 울고 있다. 이때에 어떤 젊은 농군 하나이 큰 도끼를 메고 마당으로 들어오다가, 처녀가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우뚝 서며,"아기, 왜 울어요?"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처녀는 깜짝 놀라는 듯이 한길을 바라보던 눈물 고인 눈으로 그 젊은 농군을 쳐다보고 가만히 일어나며,"나라에서 아버지를 부르신대요."하고 치마 고름으로 눈물을 씻으며 우는 양을 감추려는 듯이 외면을 하고 돌아서니, 길게 땋아 늘인 검은머리가 보인다."나라에서 부르셔요?""네, 내일 아침에 고을로 모이라고, 아까 관인이 와서 이르고 갔어요."젊은 농군은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더니,"고구려 군사가 북한산성을 쳐들어온다더니, 그래 부르남."하고, 도끼를 거기 놓고 다른 집에를 갔다가 오더니,"여러 사람 불렀다는데요. 제길, 하루나 편안할 날이 있어야지. 젊은 사람은 다 죽고, 이제는 늙은이까지 내다 죽이려나. 언제나 쌈을 아니하고 사는 세상이 온담."하고, 처녀의 느껴 우는 어깨를 바라본다. 처녀는 고개도 아니 돌리고, "가실씨는 안 뽑혔어요?"하고 묻는다. 가실은 그 젊은 농군의 이름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