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 | | 02883nmm c2200229 k 4500 |
001 | | 000000272095 |
005 | | 20190828123204 |
008 | | 190827s2002 ulk z e a kor |
020 | |
▼a 8939204433 :
▼c \8500 |
040 | |
▼a 248032
▼c 248032
▼d 248032 |
056 | |
▼a 810
▼2 5 |
090 | |
▼a 810
▼b 김52ㄴ |
100 | 1 |
▼a 김사량 |
245 | 10 |
▼a 노마만리 :
▼b 항일중국망명기
▼h [전자책] /
▼d 김사량 |
256 | |
▼a e-Book |
260 | |
▼a 서울 :
▼b 실천문학사,
▼c 2002 :
▼f (주)블루마운틴소프트 |
300 | |
▼a 40,214k :
▼b 천연색 |
516 | |
▼a XDF |
520 | |
▼a 김사량은 누구인가 최근 친일문학에 대한 논의가 다시 살아오르는 가운데, 문단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깊다. 그런데 정작 일제의 억압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한 작가를 잊고 있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일뿐더러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일본어로 작품을 써서 아쿠다가와상 후보에까지 오른 촉망받는 작가였던 김사량. 그는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할 무렵인 1945년 5월 중국 태항산 지구의 항일 근거지로 탈출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고 창작 활동을 펼쳤던 유일한 망명작가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흔히 일제하 저항문학의 대표로 언급되는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등과는 또 다르게 적극적인 저항을 함으로써 ''암흑기''의 한국근대문학사를 밝힌 빛나는 문학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남에서는 해방 이후 줄곧 북한에 머물렀다는 점 때문에, 이북에서는 연안의 조선의용군과 독립동맹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국문학 전공자나 몇몇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항일의 빛나는 저항문학이 분단 현실과 냉전의 그늘 속에 묻혀버린 채 오히려 식민종주국인 일본에서 그에 대한 연구와 저작물 출간이 활발했었다는 것은 후대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 암흑기에 태어나 식민치하 조국의 운명처럼 불확실한 삶을 살다가 한국전쟁 종군 중 행방불명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불우한 작가, 김사량! 이제 그의 삶과 문학은 온전히 되살려져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제대로 자리매김되야 한다. 『노마만리』의 출간 과정 김사량은 중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부터 귀국에 이르기까지의 전 노정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배낭 속에 보관해 오던 이 기록을 귀국 후에 정리하려고 했지만 건국사업에 참여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46년 잡지 『민성』의 청탁을 받고 ''산채기''라는 부제를 단 「연안망명기」를 2회 연재하다가 5월호부터 「노마만리」로 제목을 바꾸어 본격적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연재는 우여곡절 끝에 7회로 마감된다. 이후 김사량은 자신의 기록 전체를 정리하여 1947년 평양 양서각에서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원래는 ''탈출노상기'', ''산채생활기'', ''귀국일록''을 함께 묶을 생각이었으나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우선 그 상권으로서 ''탈출기''만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산채생활기'', ''귀국일록''은 어디에도 발표된 흔적이 없다. 이 책 『노마만리』는 1947년에 출간된 단행본을 토대로 1955년에 국립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사량선집』에 수록된 「노마만리」를 저본으로 삼아 단순한 표기법만 남한의 맞춤법에 따르고 그 외는 원문 그대로 살린 것이다. |
653 | |
▼a 김사량
▼a 선집
▼a 에세이 |
776 | 1 |
▼a 김사량
▼t 노마만리
▼z 8939204433 |
856 | 40 |
▼u http://ebook.kaya.ac.kr:8080/main/detail.asp?book_num=F8865F8F-151C-4aec-A113-9A3032505B22 |
950 | |
▼b \8500 |
990 | |
▼a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