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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 ▼a 116 ▼b 마15ㅂ
1001 ▼a 마광수
24510 ▼a (마광수 철학에세이)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h [전자책] / ▼d 마광수
256 ▼a e-Book
260 ▼a 서울 : ▼b 오늘의책, ▼c 2012 : ▼f (주)블루마운틴소프트
300 ▼a 613k : ▼b 천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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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a 당당하게 쾌락을 추구할 때 「운명」은 있을 수 없다. 운명이나 천명(天命) 따위는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성기를 가린 나무 잎사귀에서 나왔다. 그 나무 잎사귀를 과감하게 떼어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금 파라다이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신도 악마도 더이상 선악과(善惡果) 따위로 우리를 우롱하지 못하고, 우리는 그들을 아예 에덴 동산 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 운명은 없다. 신의 섭리도 없고 전생의 업보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심통 사나운 신을 닮으려는 수구적 봉건윤리뿐이다. 수구적 봉건윤리는 권력과 야합하여, “자유보다 통제가 아름답고, 개인보다 전체가 중요하며, 쾌락보다 금욕이 의미있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윽박지른다. 그리고는 우리를 불합리한 고통과 폭력에 길들여진 체념적 운명론자가 되도록 교묘하게 유도한다. 우리가 육체적 쾌락욕구로만 가득 찼던 어린아이 시절의 야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정직한 본능으로 이중적 위선과 쓸데없는 죄의식에 가득 찬 정신을 제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무명(無明)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신 곧 운명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이 땅의 솔직하고 야(野)한, 그러나 행복한 운명으로부터 소외돼 있다고 느끼고 있는 착한 이웃들에게 바친다. -'머리말' 중에서-
653 ▼a 운동과 변화
7761 ▼a 마광수 ▼t (마광수 철학에세이)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z 9788977182820
85640 ▼u http://ebook.kaya.ac.kr:8080/main/detail.asp?book_num=X0020796
950 ▼b \13000
990 ▼a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