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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가 낸 세금의 사용처에 대해 일절 발언권도 없는데 우리는 지금 공정한 삶을 살고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피 같은’ 세금을 내며 살아간다. 오죽하면 세금을 가리켜 ‘혈세血稅’라고 부르지 않는가? 국민이 누구나 납세의 의무를 지키는 이유는, 자신이 낸 세금이 결국 자신에게 혜택으로 돌아오고, 나라 살림을 나아지게 하고,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민과 국가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그런데 그 약속이 깨어지고 있다. 아니,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제도와 시스템상의 허점으로 인해 줄줄 새거나 ‘눈먼 돈’으로 쓰여 왔기 때문이다. 왜 국민이 피땀 흘려 번 돈이 엉뚱한 일에 쓰여야 할까? 수천억 원, 수조 원에 이르는 돈이 엉뚱한 곳에 낭비되는데도 왜 정작 국민은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까? 왜 어떤 이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세금을 가로채 숨겨놓고 자손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사는 일이 가능할까? 이 책 《공소시효》는 그러한 불법과 편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상의 허점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낱낱이 파헤치려 한다. 수저계급론과 갑질 문화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속살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정하게 돌아가야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라고 말할 것이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과연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 즉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국민은 합의한 듯하다. 이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유행한 ‘금수저‘, ’흙수저’로 표현되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에서도 알 수 있다. 금수저는 부모가 이미 부와 지위를 마련해놓아 좋은 환경에서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을 뜻하고, 흙수저는 부모의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고 지위가 높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기회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더불어, ‘수저계급론’과 함께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잘 대변하는 대표적인 신조어는 다름 아닌 ‘갑질’이다. 계약당사자인 ‘갑’과 ‘을’을 지칭하는 이 건조한 단어가 권력과 힘의 우열, 인격의 우열, 계급의 우열을 뜻하는 말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시점에서 ‘갑질’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강자인 ‘갑’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사회적 약자인 ‘을’에게 부당행위와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정착한 것 같다. 거기에 자조적이고 조소적인 의미로 ‘문화’라는 꼬리표까지 붙었으니 국민이 얼마나 갑질에 괴로워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수저계급론과 갑질 문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가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에게 박탈감과 좌절감을 준다는 것이다. 심각한 점은 이러한 감정적인 후퇴가 개인이 뿌리치지 못할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억압하여 결국 사회에 대해, 또는 불특정 다수의 이웃 시민에 대해 분노로 표출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미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법 위에서 법을 비웃는 사람들 적폐 청산의 최우선 대상은 누구인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10여 년간 우리가 목격한 부정부패와 부조리의 근원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의 최상층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많은 국민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불법으로 은닉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은 끝까지 추적하여 환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우리 현대사에서 전무후무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 만천하 드러났고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이 적폐가 제대로 청산되었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최순실이 불법으로 은닉한 재산을 추적하여 환수하는 절차가 남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행법의 한계다. 현행법상 일정 연한 이전의 불법과 비리를 캐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다. 공소시효가 지난 일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를 단죄할 수도 없고, 사적으로 은닉한 재산도 환수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수저계급론을 만들고 갑질 문화를 생산한 일부 특권층이 노리는 틈새다. 이 허점을 이용해 교묘히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법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을까? 방법은 있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특별법’이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한 자들이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에 대해 그 후손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해서 재산을 국고에 환수할 수 있도록 한 특별법이다. 해묵은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섬세한 시도로 만들어진 법이다. 이런 방식의 특별법을 조세법 중 공소시효법에도 적용하여, 탈세하거나 은닉한 고액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고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명박, 최순실, 박근혜 등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 혈세를 낭비한 이들,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하고 은닉한 이들을 처벌하려면, 현재의 공소시효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거나 보완해야 한다. 특별법을 만들어서 법 위에서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시스템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적폐 청산을 위한 기본 조건 공소시효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국민이 꼽는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적폐 청산의 대상자는 다른 그 어떤 계층보다도 정치인, 경제인, 기업인이다. 물론 성실하게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사회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착실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러나 ‘관행’이라는 핑계를 습관적으로 대며 부정부패를 일삼는 일부 계층이 분명히 존재한다.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이다. 우리 사회에도 매우 정교한 법과 제도가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어느 부분에서는 허점과 구멍, 취약한 부분과 틈새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 틈을 비집고 특정 소수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반면, 다수의 사람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때, 그리고 이런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고질적으로 반복될 때 바로 적폐가 되는 것이다. 공소시효가 논란의 핵이 되는 이유는 고액의 세금 탈세를 포함한 정치, 경제 범죄가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적폐를 양산하고 공정사회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적폐의 핵심이 되어온 고위층의 재산을 철저히 환수하지 못하는 한, 국민이 바라는 적폐 청산은 요원하다. 특별법을 제정해 합법적인 방법으로 압수와 수색을 진행해야 한다. 공소시효가 한정하는 기간과 상관없이, 오랜 세월 축적하고 은닉한 그들의 재산을 추적하고 조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공소시효를 보완하면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다 적폐는 우리 사회 어디에나, 어느 때에나 존재했다. 그것을 청산한다는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다른 법제도와 마찬가지로 조세 관련 제도들도 갑자기 완벽하게 개혁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꾸준한 관심과 비판, 그리고 사회지도층의 반성과 변화 의지, 제도 개선의 실행력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갑질 문화, 사회 곳곳의 불공정과 불평등, 금수저의 횡포와 부정한 부의 세습 등은 반드시 제도 개선을 통해 바뀌어야 한다. 특권층이 누리는 특권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 사회적으로 합의된 원칙을 어기는 자에게는 합당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확고한 인식, 원칙을 어기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깨어 있는 의식과 합의가 필요하다.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과 경제인은 반드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며 범법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동안 대가를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고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 변화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