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내가 걸은 그 많은 여행지 가운데 으뜸이 마르디 히말이었다 트레커의 성지, 안나푸르나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흔히 인기 코스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ABC)’ 또는 ‘푼힐 전망대 코스’를 떠올린다. 마르디 히말 코스는 그보다 덜 알려져 있다. 트레일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한결같이 “마르디 히말 이즈 뉴!(Mardi Himal is new!)”라고 외치던 그곳. 저자가 갔을 때는 트레일이 만들어진 지 겨우 10년, 한국에 알려지기도 불과 몇 해 전이었다. 저자는 그곳을 2017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보름 동안 포터도 가이드도 없이 오롯이 자신과 배낭 하나에 의지해서 올랐다. 6,000미터 이하는 산으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안나푸르나 군락에서, 그것도 신성한 마차푸차레(Machapuchare) 바로 앞에서, 그 절경에 턱없이 모자랄 법도 할 풍경에서 5,587미터의 마르디 히말은 어쩌면 지나치게 밋밋한 산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에서 “난바다에나 선 것처럼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을 주는 산, 그저 덤덤히 바위들로 이루어진 산일 뿐인데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부르는 마르디 히말. 화려한 산군에서 외려 수수해서 더 빛이 나는 산”(310p)이라고 묘사했다. 그런데 세계 방방곡곡 걷지 않은 곳이 별로 없는 그녀는 왜 “그중 마르디 히말이 최고”였다고 했을까. 안나푸르나 산기슭에 있는 〈안나산방〉의 주인, 다정 김규현 티베트문화연구소장이 “능선 길을 따라 마차푸차레 바로 산 아래 4,250미터 능선까지 올라가, 장엄한 안나 남봉(A.South)과 로드 시바(LordShiva)의 성지(聖地)이자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마차푸차레 정상을 바로 아래서 올려다 볼 수 있는 멋지고 인상적인 코스”라고 권한 덕일까? 저자는 결국 마르디 히말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곳에 가보면 그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먼지 묻은 보석을 닦아낸 것처럼 그곳이 얼마나 찬란한 지를 마침내 알아버릴지니.”(310p) 하고 경외한다. 마르디 히말은 안나푸르나의 소문난 절경과 그 유명한 마차푸차레를 곁으로 두고 바라보며 오르는 코스다. 제 자신보다 다른 산들을 더 빛나게 배경이 되어주는 묵직함을 가진 곳. 그곳에서 그녀는 늘 힘내기를 요구하는 삶,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네 삶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 책은 마르디 히말을 다녀와, 한 일간지에 30회 연재한 글들을 다시 1년간 다듬고 보태 만들어진 것이다. 걷기는 우리 삶, 우리 마음을 헤아려 보게 하는 귀한 시간 옥영경은 트레커답게 당연한 걷기 예찬론자다. 걷기는 현실의 쓴맛과 삶의 질곡에 허덕거리는 심신을 구원해준다고 여긴다. 걷기는 ‘노동’을 통해 거친 현재를 맴도는 나를 ‘오직 오늘’, ‘오직 지금’의 순수한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여행기도 산행기도 트레킹기도 그곳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라는 밑절미에 결국 걸었던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흩어졌던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녀와 함께 네팔의 카트만두로 가서 포카라 - 비레탄티 - 김체 - 간드룩 - 란드룩 - 코카르 포레스트 캠프 - 로우 캠프 - 바달단다(미들캠프) - 하이 캠프 - 뷰 포인트를 트레킹하며 MBC(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 4,250미터)에 오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바달단다 - 로우 캠프 - 코카르 포레스트 캠프 - 피탐 데우랄리를 거쳐 포타나 - 담푸스 - 아스탐 - 밀란촉 - 포카라로 내려와 다시 카트만두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이다. 그곳을 걸으며 우리는 “두 손을 크게 공 모양으로 감싸도 넘치는 크기”의 피같이 붉은 네팔 국화, 랄리구라스를 만날 것이다. 밤마다 소박한 로지에서 수줍은 네팔리와 여행객들에 섞여 노래를 부를 것이다. 새벽에 화장실을 오갈 때면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마차푸차레의 위용에 숨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준비하고 있었던 마음이라도 장엄을 이길 수 없음”(95p)을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른 아침에, 남아 있는 졸음과 온기를 떨쳐내고 웅장한 안나푸르나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러 문밖으로 달려 나가게 될 것이다. 직관과 용기로 산길을 헤쳐 나갈 때 만난 친구의 삐끗한 발목을 치료해주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산을 내려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트레킹이다. 그것도 안나푸르나 산군에서의 트레킹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은 찬란한 기억 속의 마르디 히말이다. 이 책은 읽는 이의 마음도 그곳에 닿게 한다. 사람들은 가슴에 먼 곳을 품고 산다. 잊지 않으면 잊히지 않으면 마침내 그곳에 가게 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조금의 여유만 생겨도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걷던 풍경들은 이제 아스라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집에서만 지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가 그리운 것은 광활함이다. 사람들과 함께 나눈 왁자지껄한 흥과 웅장한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다. 이 모든 것이 그리울 때,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다시 품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에 먼 곳을 품고 살며, 잊지 않으면, 잊히지 않으면 우리는 마침내 다시, 그곳에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된 모리스 에르조그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 이 책은 저자 옥영경의 안나푸르나, 마르디 히말의 이야기다. 또, 가슴 속에 품고 있을 읽는 이의 안나푸르나를 위한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안나푸르나, 마르디 히말을 오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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