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사람의 손이 다듬기는 하였어도 나무들은, 더구나 여름나무들은 가지마다 넘치는 자연이었다. 잔디도 푸르고 벤치 뒤에 드리운 그늘도 푸르고 하루갈이도 못 되는 좁다란 도심지대의 공원이건만 푸름은 겹겹이 둘리어 그들의 흰 적삼, 흰 치마의 고운 모시는 헝겊이 아니라 꽃처럼 순결해 보였다. 나이도 비슷한 두 처녀, 한 벤치 위에 되도록 서로 마주앉았다. 서로 얼굴을 뜯어본다. 서로 눈웃음이 넘치면 소리로 웃는다. 웃다가 시계를 본다. 시계를 보고는 큰길 쪽을 내다본다. 내다보다가는 다시 서로 얼굴을 본다. 웃는다. 그러나 말은 못한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다 모이기 전에는 한 마디도 먼저 이야기를 해선 큰일나기로 짠 것이었다. 꼭 다섯 달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삼월 구일 졸업식 날 헤어지고는 팔월 구일 이 날 파고다공원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중학에서부터 세 소녀는 모시옷을 사랑하는 것으로 의기가 서로 투합되었고 전문학교에서 고스란히 문과를 지원하여 같은 학문을 전공하면서부터는 이 세처녀는 벌써 일종 인생에의 반려감을 서로 느껴 서로 못할 속사정이 없게 되어왔다. 현실이니 사회니 하고 암만들 떠들어도 이 세 사람 저희들 사이엔 가르고 들어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든 저희 셋끼리 만의 현실이요 사회일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덧 졸업이 박두해서부터는 이들도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우리는''이 아니라''넌''소리를 쓰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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