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병술년(1589, 선조 19년) 일본국 사신 귤강광(橘康廣)이 일본 왕 평수길(平秀吉: 풍신수길을 말함)의 서신을 갖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일본 국왕 원씨가 홍무(명나라 태조의 연호) 초기에 나라를 세워 우리와 국교를 맺은 지 200년이 되었다. 처음엔 일본에 좋은 일이 있거나 국왕이 죽거나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사신을 보냈다. 신숙주가 사신으로 다녀온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가 죽을 때 임금(성종)께서 “남길 말이 있는가?”라고 묻자 “일본과 관계를 좋게 유지하십시오.” 하였다. 임금께서 그 말을 듣고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을 사신으로 임명하여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였다. 이들이 대마도에 상륙하였을 때 풍랑으로 병을 얻은 관계로 대마도주에게 편지와 선물만 전하고 돌아왔다. 그 후로는 따로 사신을 보내진 않고, 다만 일본에서 사신이 올 때만 예를 갖추어 대접하였다. 이 무렵 평수길이 원씨를 대신하여 일본 국왕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평수길이 본래 중국인인데, 일본에 건너와 나무 장사를 하고 살았다. 어느 날 일본 국왕이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 사람됨이 기이하여 군대에 들어오게 하였다. 힘이 세고, 전투를 잘해서 곧 높은 벼슬을 하게 되었다. 결국 원씨를 밀어내고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원씨가 살해당하자 평수길이 그 원수를 갚고 나라를 빼앗았다.”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가 무력으로 일본의 여러 섬을 평정하고, 66주를 통일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나라를 침범할 뜻을 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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