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이설주(1908~2001)의 초기 시집 《들국화》와 《방랑기》는 북방파의 외방지향의 정서가 향수(鄕愁)로 육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시집을 지배하고 있는 시의식은 이향(離鄕)과 방랑(放浪)의 고통인데, 이것이 이설주의 시에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재에 대한 부정이라는 이중적 운동으로, 서정적 자아를 텅 빈 공간으로 내모는 요인으로 반응했다. 이런 방랑의 고통이 구성하는 미화된 과거는 결국 현재의 소거(消去)라는 시의식으로 귀착한다. 이런 점은 1930년대 말기부터 한국문단에 나타난 북방파 시인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시의식인데, 이설주 시에서 유독 집중적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그런데 외연으로만 보면 감상 과잉의 외방지향으로 표출되지만, 그 내포는 과거를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현재의 불행을 잊으려는 한 시대상으로 응축된다. 따라서 이설주의 이런 성향은 북방파 시문학이 거둔 주요한 성과의 하나로 평가해야 한다. 이설주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다른 하나의 정체(正體)는 일제강점기 이 땅의 민초들이 당면했던 커다란 재앙, 그러니까 민족만 있고 국가는 없는 상실감이 서사화되는 시의식이다. 이것 역시 북방파 시인들의 특성이지만 이설주의 경우에는 시인의 삶 자체를 지배한 요인이 되었다. 초기에는 이런 점이 이 시인을 고독한 방랑객으로 내모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니까 이설주 시의 주조를 이루는 허무와 애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정면 대응을 우회한 시적 반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