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이미 우리들의 곁을 떠난 김인제 약사(藥師)의 작품을 읽었다. 일반 시인들의 원고를 통독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느껴지고, 살아생전 그 가슴에 품고 있었던 짙은 고뇌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화자의 시를 탐색해보면 삶의 체험에서 깨달은 독백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독백의 대상을 넓게 보면 동시대, 현대인들 전체를 포함 시킬 수 있겠지만, 그 폭을 좁히다보면 자신이 자신에게 고백하는 내면의식으로 압축된다. 외적 자아가 내적 자아를 향하여 말하고, 깨우치고, 갈등하고 있는 김인제의 시 세계는 확고한 예술관을 바탕으로 하여 깊은 철학과 진리를 수반하고 있다. 그 이유는 파도치는 현실의 바다에서 고뇌의 그물을 깊이 내려 포획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가을비 내리는 오후 창밖을 본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피하면 피할수록 외로워진다 홀로 됨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즐길 때 덜 외롭다 지독한 외로움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자유가 있다 외로운 사람이 사랑을 알고 모두를 사랑하게 되는가보다 ― 「약국에 홀로」 전문 위의 시에서 가을비 내리는 날, 약국에 홀로 앉아 창을 바라보는 화자의 외로움이 포착된다. 약국 안에서 머물고 있지만 이미 그는 고독이란 피할 수 없는 비에 흠뻑 젖어있는 상태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로움’은 외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거룩한 신 앞에서의 고독이면서 인간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그 자체의 고독이다. 김인제는 자신의 고독이 피하면 피할수록 더 외로워져 두렵지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자유와 기쁨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진리가 내포된 멋진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누구나 고독을 느끼지만, 그 깊이와 넓이는 각각 다르다. 화자는 고독했다. 그 고독의 근본원인은 물질적인 결핍이나 환경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뭇 사람들을 더 사랑하지 못한데서 오는 심적인 우울이고 슬픔이었다. 약국 문을 드나드는 환자들에게 전문지식으로 조제한 몇 알의 약을 건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실한 체험과 감성을 함축한 시와 수필을 틈틈이 쓰게 되었고 고고한 문학에 접근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화학공법으로 합성한 약들은 육체적인 질병만을 치료하지만, 문학과 예술은 내면의 병, 영혼의 병을 치료하는 데까지 그 영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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