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 밤새도록 비가 부실부실 내리고 아침이 되면서 개었다. 반짝 들어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다사하게 햇빛이 비치고 있었으나 땅은 아직도 물수렁이었다. 쓰레기통과 그 옆에 흩어져 있는 오예물 벽 밑으로 가로 세워진 헌 구루마 판장 이런 것들은 흠뻑 비를 머금은 채였고 그러한 것이 눈에 띄이는 좁다란 골목길은 어디나 진흙바다다. 나는 이러한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양복은 어젯밤 맞은 비로 인하여 후줄구례하고 이따금 내려다보니 구두이 묘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분간을 못하게 그냥 진흙투성이다. 양복가방도 맨흙덩이었다. 그러니 꼴이 엉망진창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상하게 골치는 아프지 않았다. 커녕 정신이 아주 쾌락하였다. 저절로 어깨에 힘이 구어지고 다리는 아무런 괴로움도 없이 버젓하게 걸어 좋다. 한껏 괴로했던데서 새롭게 반발하여오는 힘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젯밤 술 먹은 것으로 인하여 새삼스러이 흥분한 까닭인지 또한 아침에 별안간 비가 개고 날씨가 청명해진 탓인지 하여간 좀 부자연한 듯 하면서도 전신에서 왕성한 원기가 복받쳐 올라옴을 느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대문 근처서부터 여기까지 이렇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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